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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33건)

신응시- 풍영정에서, 風詠亭(光山)
老作雄州力未休。登臨聊遣簿書愁。天高衆嶽爭抽䯻。野曠長江任轉洲。勝賞固非山簡出。淸樽强被習家留。坐中逃醉先騎馬。正是河橋一篴秋。신응시, 《백록유고(白麓遺稿)》
동강유집 제6권 / 칠언율시(七言律詩)- 풍영정 신익전
동강유집 제6권 / 칠언율시(七言律詩)풍영정에서 규암의 시에 차운하여 본도 도사에게 보내어 화답을 구하다〔風詠亭次圭菴韻呈本道亞使求和〕여러 해 바삐 애쓰느라 쉬지도 못했는데 / 勞碌多年未卜休높은 누각 올라오니 시름 더욱 보태지네 / 登臨快閣迥添愁구름 덮인 봉우리 은은하게 평야를 둘러싸고 / 雲岑隱約圍平野안
갈처사가 쓴 풍영정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풍영정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에 있는 풍영정(風詠亭) 이름의 유래와 현판 글씨에 대한 이야기이다. 풍영정 현판의 글씨체가 다른 이유와 임진왜란 때 불에 탈 뻔하였으나 현판 글씨가 오리로 변해서 화재를 막았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
우잠만고ㆍ우잠잡저
장태경 (張泰慶 , 1809 ~ 1887)의 우잠만고ㆍ우잠잡저 : 愚岑漫稿ㆍ愚岑雜著는 국역본으로 2010년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간행되었다.이 책에는 풍영정, 취백루, 서석산, 장원봉, 금당산, 제봉산, 사인봉, 극락강, 경호, 분적산, 황화루 등 광주 관련 시들이 상당히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5권 / 전라도(全羅道) 광산현(光山縣)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5권 / 전라도(全羅道) 광산현(光山縣) 동쪽으로 창평현(昌平縣) 경계까지 18리, 남쪽으로 화순현(和順縣) 경계까지 21리, 남평현(南平縣) 경계까지 28리, 서쪽으로 나주(羅州) 경계까지 47리, 북쪽으로 진원현(珍原縣) 경계까지 21리이며, 서울까지의 거리는 7백 25리이다. 【건치연혁】 본래 백제의
풍영정의 시에 차운하다〔次風詠亭韻〕, 김언거(金彦琚)의 정자이다. - 고봉속집 제1권
풍영정의 시에 차운하다〔次風詠亭韻〕, 김언거(金彦琚)의 정자이다. - 고봉속집 제1권 : 기대승(奇大升, 1527~1572). 자는 명언(明彦), 호는 고봉(高峯)ㆍ존재(存齋)이며, 본관은 행주(幸州)이고, 시호는 문헌(文憲)이다.산에 노는 나그네 쉬지 못하다가 / 遊山羈客不能休우연히 선창에 이르러 시름을 풀었노라 / 偶到
장유- 名亭駐皂蓋 (풍영정에서) 계곡선생집 제28권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의 시문집 <계곡집>광산의 임 수재(任守宰)와 정 중서(鄭中書)가 함께 풍영정에서 모여 담양(潭陽)의 수재(守宰)인 이무백(李茂伯)을 전송하기로 했는데, 내가 병 때문에 약속 장소에 나갈 수가 없게 되었으므로 서글픈 생각이 들어 시를 지었다.[光山任宰與鄭中書 共集風詠亭 送潭守
신창동-풍영정風詠亭
풍영정風詠亭 : 광주 마지면(馬池面)의 선창리(仙倉里)에 있다. 김씨선조가 건립했다.현재 광산구 신창동이다. 풍영정이 있다.- 朝鮮地誌資料(1910)
신창동-풍영정진 風詠亭津
풍영정진 風詠亭津 : 광주 마지면(馬池面)의 도진명(渡津名)이다. 창신리(暮新里)에 있다. 현 광산구 신창동이다. 풍영정이 있다.- 朝鮮地誌資料(1910)
선암동 선암마을
선암仙岩마을은 송정동 영광통에서 금호타이어 광주공장을 지나 매일유업과 호남대학교 사이의 대로변 우측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전체적인 마을 형상은 마을 뒤편은 어등산이 감싸고 어등산 남록이 마치 소쿠리 모양을 이루며 마을 앞에는 황룡강이 흐른다. 그래서 배산임수의 풍수지리적인 조건을 두루 갖춘 마을이라고 할
강루 江樓
광주 강루는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 1519 ∼1581)의 《송천유집(松川遺集)》 松川先生遺集卷之一에 시 "광주 임곡의 황룡강에  있는 박 거사 강루에서 쓰다.題朴居士江樓 光州林谷黃龍江上"이라는 글에서 찾을 수 있다. 결국 광주 강루(江樓)는 조선 중기에 박 거사(朴居士)라는 인물이 황룡강
김치원
김치원(金致謜 1562~?)의 자는 화제(和濟), 호는 수진당(守眞堂)이다. 현신교위(顯信校尉)를 역임했으며, 임진왜란 때는 권율장군을 도와 이치전투에서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湖節3上-021-3, 光州, 壬辰, 權慄參佐 -《호남절의록》(1799)칠계(漆溪) 김언거(金彦琚, 1503~1584)의 손자 김치원(金致謜 1562~?)은 ‘수진
칠계 김언거(1503~1584)
김언거(金彦琚, 1503∼1584)의 본관은 광산, 자는 계진(季珍), 호는 칠계(漆溪)이다. 김정(金禎)의 셋째 아들로 광주에서 태어났다.김언거는 1525(중종20년)년 사마시司馬試, 1531년 문과에 급제한 뒤 이듬해 예조좌랑 및 사간원 정언에 제수되었다. 1542년에는 낭관을 지내다가 체직되었고, 1545년에는 금산군수에서 사헌부
풍영정 風詠亭
광산구 풍영정길 21(신창동)   풍영정은 조선시대 승문원판교를 지낸 칠계 김언거(金彦据, 1503∼1584)가 지은 정자로 광주와 광산 일대에 있는 100여 개의 정각 중 대표적인 것이다.《광주읍지》(1879, 1924)에는 주의 서북쪽 20리에 있다. 지금의 광산구 신창동 선창산(仙滄山)과 극락강(極樂江)이 마주치는 강변의
청원정 淸遠亭
광산구 풍영정길 21 (신창동) 청원정은 광산구 신창동은 옛 광주 마지면馬池面 선창리仙滄里 선창산과 칠천漆川 강변에 있었다. 옥과 훈도를 지낸 김언거의 중형인 청원정 김언우(金彦瑀)의 정자이다. 인근에 칠계 김언거(金彦据, 1503~1584)의 풍영정이 자리하고 있다. 정자가 자리했던 극락강을 칠
죽와 竹窩
광산구 풍영정길 21 (신창동)   풍영정의 주인 칠계 김언거金彦据 (1503~1584)의 5세손 죽와竹窩 김정혁金廷赫(1611~ ?)은 풍영정을 관리하면서 일대에 ‘죽와竹窩’도 관리했다. 《십성당집(十省堂集)》을 남긴 엄흔嚴昕(1508~1543)의 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죽와는 김언거 생전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수진당 守眞堂
광산구 신창동   풍영정(風詠亭)의 주인 칠계 김언거의 손자 김치원金致謜(1562~?)은 수진당을 경영하며 풍영정도 관리했다. 김치원의 자는 화제(和濟), 호는 수진당이다. 현신교위顯信校尉를 역임했으며 임진왜란 때는 권율 장군을 도와 이치전투에서 공을 세웠던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이곳에서는 임련林堜, 장운익
선암역仙岩驛 누각
광산구 선암동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 제35권 광산현光山縣 편에 광주 주변의 역으로 선암역은 현의 서쪽 40리에 있다. 《광주읍지》(1879, 1924)에도 주의 서쪽 40리에 있는 데 또한 관원 전용 주막인 원院이 있다고 했다. 이곳은 유배자들도 쉬어 자는 곳이었다. 1750년대 초반에 제작된 해동지
서루 書樓
광산구 풍영정길 21   광산구 신창동 선창산과 극락강이 마주치는 강변 일대에는 무수한 정자군이 있었다. 대표적인 정자가 1560년 승문원承文院 판교를 끝으로 관직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칠계 김언거가 지은 풍영정이다.그의 6세손 김이려金以呂(1633~?)는 서루書樓를 지었다. 서루에 시를 남긴 사람은 朴潢, 尹
삼우당 三友堂
북구 운암동 (대내마을)   삼우당 이제백李齊白(1682~1759)이 시문을 짓고 풍류를 즐기며 지역 인사들과 지냈던 곳이다. 광산인으로 자가 백여(白汝)이며 호는 삼우당(三友堂)이다.매화(梅)와 동백(栢)을 심고 그 아래에 바위(巖)를 두고 삼우당이라 편액하고 매화의 청결함과 동백의 곧음, 돌의 견고함을 벗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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